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학입학 학력고사 (문단 편집) == 사건/사고 == * 학력고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해인 1981년 서울대 법대에 300점 이상을 획득한 많은 학생들이 겁을 내어 지원하지 않은 덕에 학과가 미달이 나서 이른바 '배짱 지원'을 한 학력고사 200점 이하인 학생 5명이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사건도 있었다.[* 학력고사 시기에는 원서를 넣을 때 학과 정원이 미달되면 무조건 합격이었다. 즉 운만 좋으면 자기 실력보다도 더 좋은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단 흠좀무한 얘기.] 이 사람들은 면접에서 교수가 영작을 해 보라고 요구하자 '관악산에 노루가 뛰논다' 를 ''''관악 마운틴 노루점핑(...)'''', '법대 교수'를 ''''티쳐 오브 법대(!!!)'''' ~~교수를 교사로 격하시키는 위엄.~~ '너는 참아다오'를 ''''유 니드 노 에너지(???)'''' 등 [[충공깽]]급 대답을 보여 당시 교수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중 한 명만 빼고 모두 졸업에 성공했고 그들 중 한명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니 놀랄 노자. 게다가 법대 외에도 서울대 상당수 학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가히 [[원서 영역]]의 시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82학년도 학력고사 이후의 서울대 입시 요강에는 '본교 수학이 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경우 합격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12900329207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1-29&officeId=00032&pageNo=7&printNo=10871&publishType=00020|당시 기사]] * 1982년 1월 27일에 대학입학 학력고사에 합격했는데도 불합격한 것으로 착각한 수험생 박모 군이[* 기사에 의하면 이 수험생은 부산가야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타임머신에서는 고삼생이라는 가명으로 등장했다.] 박 군의 이모에게 불합격했다는 전화를 걸고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도중 수험생의 이모가 뒤늦게 학교 측에 전화를 걸어 뒤늦게 합격 확인을 알고 이모가 순찰차에 수배를 요청, 경찰이 박 군이 타고 있는 고속버스를 추적, 고속버스에 타고 있던 박 군을 찾아 가까스로 신체검사를 마쳐 합격의 영광을 차지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수험생은 학력 고사에서 278점을 얻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응시, 27일 아침에 발표자 명단에 자기 이름이 빠져 있던 걸로 착각해서 부산 행 고속버스를 탔다고 한다.[[https://news.joins.com/article/1615257|낙방 오인 귀향하다 경찰 도움으로 합격(1982.01.28. 중앙일보 11면 기사)]][* 해당 기사는 MBC의 [[타임머신(텔레비전 프로그램)|타임머신]]에서 재연해 방영하기도 했다.(2003.11.09 95회 방영, '이상한 수배자' 에피소드)] 졸업 후 [[SC제일은행|제일은행]]에 입사, 부장까지 역임했다고 하니 천만다행. * 1992학년도 후기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하루 앞둔 [[1992년]] [[1월 21일]]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보관 중인 학력고사 문제지 포장 박스 겉면이 뜯겨져 있는 것을 경비원 정 씨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지가 각 교시별로 1부씩 없어진 것이 확인되었고, 이에 교육부에서는 부랴부랴 전국 각 대학에서 보관 중인 문제지를 긴급 회수하여 파기하는 한편, 1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후기 대입 학력고사를 2월 10일로 연기했다. 이 사건으로 21일로 예정된 예비 소집을 위해 올라와 있던 수험생들은 헛걸음을 치고 되돌아가야 했고, 22일 학력고사 실시와 함께 연금 상태에서 풀려날 예정이었던 학력고사 출제 위원들은 20일을 더 붙잡혀서 문제를 재출제해야 했다. ~~세상에...~~ 결국 많은 수험생들 및 출제 위원들은 2월 2일~5일로 이어지는 설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수험 공부 및 문제 출제에 매달려야 했고, 후기대 입시 관계자들 역시 합격자 발표 예정일인 2월 15일까지 불과 5일 안에 입학 사정을 끝마치고 합격자를 발표해야 했기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또한 [[전문대학]] 입시도 예정된 2월 19일에서 1주일 연기되는 바람에 전문대 입시 관계자들도 불과 3일이라는 촉박한 시간 안에 입학 사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 탓에 입학관리팀들은 입학 사정이 끝날 때까지 매일 야근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많은 대학들이 [[편입학]] 시험을 취소, 연기해야 했다. 하지만 서울산업대(현 [[서울과기대]])와 [[개방대학]], [[추계예술대학교]]는 대학에서 별도로 문제를 만들어 치렀기 때문에 예정 그대로 시험이 진행되었다. 한편 이 사건의 여파로 당시 교육부 장관 [[윤형섭]]이 경질되고, 후임으로 [[조완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교수(동물학)를 역임했으며 [[타임라이프|한국일보 타임-라이프]]에서 1980년(개정판은 1991년)에 출판했던 "세계의 야생동물(오리지널 타임라이프판 제목은 Wild,Wild World of Animals)" 한국어판의 자문을 맡기도 했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총장이 임명되었다. 또한 정부의 공공기관 출근시간을 평소처럼 정상시간대로 출근했고, 원래 늦게 시작하려 했던 증권시장과 은행도 평소처럼 정상 시간대로 개장 및 개점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1220028910400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2-01-22&officeId=00028&pageNo=4&printNo=1138&publishType=00010|당시 기사]] || [youtube(wfKlrkTyqo8)] || 이후 경찰 수사 결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최초 신고자이자 당시 야간 당직을 맡고 있던 경비원 정 씨가 지목되었다. 해당 경비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 집사의 딸인 황 양이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으로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며, 정작 시험지는 해당 수험생에게 전달하지 않고 바로 불태워 버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수사에도 물증을 잡아내지는 못했고, 도울 생각이었다던 황 양은 이미 합격권이었던데다 결정적으로 이 학교에는 장학금 제도가 없다는 게 드러나 정 씨의 진술 내용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시험지를 불태우지 않고 찢었다고 하는 둥 진술을 번복하였기에 경찰은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 판단하고 공범의 여부를 수사한다. 경찰은 정 씨의 ‘수상한 행적’을 제보했던 경비과장 조 씨를 용의선상에 올렸으나, 조 씨가 28일에 자살하여 수사의 난항이 이어졌고, 끝내 증거는 발견하지 못한 채 “조 씨가 정 씨를 시켜 범행하였다”로 결론 짓고, 사건은 미결로 남게 된다. 정 씨는 이후 기소되었는데, 이 사건과 무관한 1989년에 다른 회사에서 재직했을 때의 횡령 사건으로만 기소됐고, 도난 사건에 대한 혐의인 특수절도죄는 제외됐다. 정 씨는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12098|당시 기사1]][[http://imnews.imbc.com/replay/1992/nwdesk/article/1909898_30556.html|당시 기사2]][[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367833.html|당시 기사3]][[https://www.asiae.co.kr/article/2017111614095059560|관련 기사]] 이 사건을 계기로 93학년도 대입 학력고사부터는 시험지를 시험 당일 새벽에 고사장으로 이송하게 되었고, 이는 1994학년도부터 시행된 수학능력시험에서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선지원 후시험제가 실시되던 1988학년도 학력고사 이후로 시험 출제 및 인쇄를 제외한 모든 고사 관리 책임이 각 대학으로 이관되면서 끊임없이 불거진 고사 관리의 공정성 문제와 함께 과도한 눈치 작전으로 인한 입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소정의 목적마저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함께 대두되며 가뜩이나 폐지 수순이 머지 않은 학력고사가 시행 11년만에 막을 내리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전기대에 비해 모집 및 응시 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후기대 입시에서 일어난 이번 사태로도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힐 정도였는데, 만일 이게 전국 주요 대학들이 몰려 있고 거의 모든 수험생이 응시하는 전기대 입시에서 일어났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1992년 1월 27일에 방송된 [[한바탕 웃음으로]]의 [[봉숭아학당]]에서 [[배동성]]이 이를 패러디했다. '''시험지 가져와!!!''' '''경비원!!!'''[[https://youtu.be/gDQVxI2TEE4?t=506|해당 영상]] 이 시험지 도난 사건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22년 12월 9일 방영분에서 '1992년 대입 시험지 도난 사건: 정답 없음'이라는 제하에 소개되었다. 전국을 발칵 뒤집었던 초유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로 석연찮은 점이 많았던 사건이라, 해당 방영분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도 전반적으로 뒤끝이 상당히 찝찝한 에피소드였다는 평. 특히 당시 일부 [[기레기]]들이 수사관들에게 "경비원 정 씨를 '''고문해서라도 자백을 받아 봐라, 그래야 우리도 보도를 할 게 아니냐'''"라는 망언을 했다는 사실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많은 시청자들이 '그 때나 지금이나 기레기들은 여전하구나'라며 개탄하기도 했다.[* 해당 방영분에서는 당시 담당 수사관의 인터뷰도 나왔는데, 이 때 경비원 정 씨는 수사관에게 '''도대체 시험지 한 장이 얼마기에 온 나라가 이렇게 난리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수사관은 그 질문에 대해 차마 답을 주지 못했다면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정 씨의 그 질문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여담으로 이 때 도난 신고를 접수받은 사람이 당시 경위였던 [[표창원]]이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더불어 본인 인생을 바꾼 두 가지 사건 중 하나라고. * 1993학년도 학력고사에서 사전에 정답이 유출되는 입시 부정이 일어났다. 1993학년도 후기 입시에서 [[순천향대]] 의대를 지원한 함 모양은 339점을 받아 최고 득점을 올렸다. [[숙명여자고등학교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 사건|그러나 고교 내신 등수가 꼴등으로 최하등급 10등급이었던 함 모양의 점수]]를 이상하게 여긴 입시처의 조사로 꼬리가 밟혔다. 뿐만 아니라 함 모양의 두 언니들도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유출해 부정입학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br][br] 함 양의 아버지는 유명 성형외과 원장으로 큰 돈을 벌어 [[한서대학교|대학교]]를 설립하고 재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국립교육평가원]]의 [[장학사]] 김 모씨에게 거액을 주고 정답을 사전에 빼내어 세 딸을 모두 의과대학에 진학시켰다. 이 세 딸의 성적이 가관인데 첫째 딸은 이과 106명 중 104등(10등급)의 내신으로 1991학년도 314점을 받고 [[충남대]] 의예과에 들어갔고, 둘째 딸은 이과 175명 중 135등(7등급)의 내신으로 1991학년도 309점을 받아 [[단국대]] 전체수석을 차지해 의예과에 입학했다. 셋째 딸은 이과 94명 중 1학기 94등, 2학기 93등(10등급)으로 전기 입시에서 [[충북대]] 의예과를 지원해 308점을 받았다.[* 어차피 정답을 모두 알고 있으므로 만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지나친 고득점은 의심을 살 수 있으므로 예년 기준으로 안정권인 점수만 받으면 되었다.] 다른 때라면 충분한 점수였겠으나 1993학년도 입시는 역대급으로 쉬웠던 터라 점수 인플레로 내신을 합산한 점수가 모자라 불합격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후기 입시에서는 무려 339점을 받는 바람에 오히려 의심을 사고 말았다.[* 후기는 대부분 전기에 떨어진 학생들이 응시하고 보통 명문대는 분할 모집을 하지 않고 전기 모집만 하기 때문에 후기 입시에서 이런 고득점자가 나오는 것 자체도 드문 일인 데다가 내신까지 최하 등급이었으니 의심을 살 만했다.] [br][br] 김 모 장학사는 2심에서 징역 8년, 추징금 3억원을 선고받았고, 함씨는 부인이 저지른 짓으로 본인은 몰랐다고 주장하여 결국 함씨의 부인 한 모씨만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세 딸은 모두 입학이 취소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